“없는이의 행복”출간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민족의 장래는 아이들에게 달렸다’는 신념으로 어린이운동에 헌신했던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1899~1931) 선생의 미공개 수필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출간됐다. 
그의 71주기(7월 23일)를 맞아 나온‘없는 이의 행복’(오늘의책 출판사)이다. 이 책에는 방정환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과‘어린이’‘부인’‘별건곤’‘개벽’등 여러 잡지에 기고했던 54편의 글이 실려있다. 이 중 26편은 발표 이후 그대로 묻혀버렸거나 잔물, 금파리, 북극성, 몽중인 등 여러 필명으로 발표돼 필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했던 글들이다. 

‘없는 이의 행복’을 읽으면 아동문학가로서의 소파보다는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계몽운동가, 또는 일찍이 도쿄에 유학했던 지식인으로서의 풍모가 편편에서 느껴진다. 특히 1920~1930년대의 생활상 을 치밀하고도 유머넘치는 필치로 그리고있는 몇 편의 수필은 한 폭의 세밀 풍속 화를 보는 듯하다. 

여학교 동창회의 풍경을 그린‘여학생과 결혼하면’이라는 글을 보자.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동창생들이 결혼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제발 월급쟁이나 시어미 있는 데는연애 아니라 아무거래도 가지를 말아요. 사람이 그냥 썩어요 썩어!”“혼자 살면 혼자 살지 누가 그런데로 가!”‘ 
살림살이 대검토’라는 긴 글에서는 조선인의 생활에서 잘못된 점들을 조목조목 짚어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조선사람의 가정은 하루종일 직무에 충실하느라고 피곤해 가지고 돌아와서 평안히 쉴 수 있는 재미있는 가정이 아니라 커다란 객주집 여관”이라고 말한다. 

의복에 대해서도 흰옷이 깨끗하고 순결하나 자주 빨아야 하며 금방 상해‘백의 망국론’까지 있다고 적고 있다. 
소파의 육아론은 지금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린이는 사람의 한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한 부부의 몸을 거쳐 나왔지 결코 부모의 마음대로 이러고 저러고 할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한 발 더 나아가“아버지 말만 듣고 아버지 비위에만 맞는 인물이 된다면 그 집에는 더 새로운 운수가 올 길이 없다”면서“지금 조선사람들은 너무 주제넘지 못하고 건방지지 못해서 아무 짓도 신기한 짓도 없어서 탈”이라고 말한다. 

탑동공원, 장충단공원, 한양공원 등 당시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공원의 여름밤 풍경을 스케치한 ‘서울의 공원풍경’에서는 소파의 정답고 따사로운 마음, 사물을 관찰하는 예리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밖에 강제오배주(强制五盃酒)의 술 마시는 풍토, 1920년대 신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머리 스타일인‘트레머리’, 일경(日警)에게 미행당하던 일 등이 흥미롭다. 

소파는 보성전문을 나와 일본도요(東洋)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배웠으며,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어린이운동을 펼쳤다.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으며, 1923년 순수아동잡지‘어린이’를 창간하고 어린이문화운동단체인‘색동회’를 조직했다. 

책을 엮은 한국방정환재단의 민윤식씨는“소파는 단순한 아동문학가 이전에 천재적인 저널리스트였고, 열정적인 편집자였다”면서“그의 생애는 33년으로 너무 짧게 끝났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承仁培기자 jan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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