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마음의 교류, 심포지엄” -헌정지 5월호

헌정지는 한국방정환재단이 주최한 “한ㆍ일 마음의 교류 심포지엄”에서 일본 측 아베교수가 행한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사회의 고령화에 대한 대비를 역설하였다. 
다음은 헌정지 2004년 5월에 게재된 내용이다. 

한주먹의 쌀공양이 福祉의 원점이다 
阿部志郞 (前 日本사회복지학회 회장) 

이 글은 한국방정환재단(이사장 李億淳) 주최로 열린 “韓ㆍ日마음의 교류,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사회복지 문제 권위자인 아베(阿部志郞ㆍ78)교수가 행한 기조 연설을 발췌한 것이다.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편집자> 

일본에서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해는 1963년, 그때 백살이 넘은분은 153명이었다. 
지난해 9월 현재 백살을 넘은 분은 정확히 2만 5백6십1명이라고 한다. 갓난아이가 죽지도 않고 노인들은 오래사니 우리들은 대단히 축복받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기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옛날부터 일본에도 노인을 산에 내다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노인들은 버려지기 전에 가족이나 지역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생겨났으며, 오늘날 일본에서도 아주 고약한 문제 중의 하나가 노인들의 자살이다. 

1992년 일본의 노인자살자는 2만 명을 넘었으며 21세기 들어서 3만명을 넘게 생겼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자살자가 늘지 않고 있는데 유독 일본의 자살율은 해마다 늘고 있고 전체자살자의 35%가 노인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일본에선 노인을 내다버리는 기로(棄老)가늘어 경로(敬老)사상은 차츰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를 맞아 지금일본은 거의 필사적으로 고령화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일본의 대응방법을 한국이 배웠으면 한다. 한국의 고령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하기 때문에 당장 대비한다고 해도 결코 빠른 것은 아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고령화 대책이 마련되고 있고 이에 대한 기본법도 제정되었다고 듣고 있다. 

다만 한국이 크게 신경을 써야할 것은 출산율이다. 한사람의 어머니가 일생동안 평균 5명의 자녀를 출산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 출산율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일본은 1.32인인데 비해 한국은 그보다도 더 적어 1.17인이라고 한다.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이다. 아이를 몇 명 낳느냐는 것은 엄마아빠의 가치판단이라 자유겠지만, 어린애의 숫자가 줄어들고 자꾸자꾸 고령화가 되었을 때 고령사회를 누가 맡을 것인지 큰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존경받는 직업이 셋 있었다. 의사, 변호사 , 목사가 그것이다. 
이 세 직업은 높은 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제각기 그 지역에선 저명인사였다. 또 하나 대단히 중요한 공통점은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약자를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했다. 사회사업가라는 직업은 이런 계열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사업가는 약한 사람을 돕고 지탱해 주는 직업인만큼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1889년 하와이의 모로카이 섬에서 레미레이 신부님이 문둥병에 걸려 사망했다. 레미레이 신부는 벨기에 출신이고 그때 벨기에는 군함을 하와이에 보내 그 시신을 인계했다. 그 배가 벨기에의 항구에 들어갔을 때 그 배를 마중한 것은 벨기에의 국왕이었다. 그것이 나는 복지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위해서 생애를 바친 사람을 나라가 나서서 감사하고 그 사람을 높이는 문화, 그것이 복지 문화인 것이다. 

한국의 지역복지관을 가본 적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니 대문 옆에 큰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 복지관에 오는 사람들마다 한 주먹의 쌀을 갖고 와 그 항아리에 넣는 것을 보았다. 누가 넣는지 누가 갖고 가는지 그것은 익명이다. 그렇지만 그 쌀을 넣는 사람이나 그 쌀을 갖고 가는 사람이나 신뢰관계가 없으면 그런 일은 성립될 수 없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립하고 서로를 돕는 그런 일이 지역복지의 원점이다. 
공양의 의미는 집에서 한주먹의 쌀을 갖고 와 바치는 것이다. 재해가 생기면 그 쌀을 기부하는 것이다. 단지 한주먹. 나는 복지라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세우기 위해 서로 한주먹의 쌀을 비축하고 그것을 기부하는 행위가 아닌 가 그렇게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제일 적은 단위의 화폐를 바친다 라는 말이 있다.많은 화폐를 바치지 않아도 좋고 단지 한 개의 동전을 저축하고 바치자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복지라고해서 별다른 게 아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주먹 쌀 최소의 동전 한 닢을 바치는 것 그것부터 출발을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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